지구는 선택해야만 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문명의 무게가 이제는 버거웠다. 

한 종족의 번영을 위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의 양보. 이 파괴의 흐름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구는 그 종족을 조금 더 '자연친화적'으로 바꿔주었다.

 

멸망의 날 이후 이전엔 없던 생명체가 나타났다. 원래는 '인간'으로 불렸으나 이제는 감염성 포자를 퍼트리며 걸어다니는 독버섯 같은 무언가. 

이들은 오직 인간에게만 반응하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뭉쳤고, 역할을 분담했다. 

누군가는 무기를 들었고, 누군가는 버섯 사이를 헤치며 식량과 물자를 찾아냈다.

 

오롯이 인간의 몫인 멸망 속에서 생존자들의 삶은 위태롭게 이어지고 있었다.